오선지 밖을 떠도는 '김광석의 깊이'… 詩的 도약을 이루는 염세

[이주엽의 이 노래를 듣다가]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중

동굴 안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다. 동굴은 어둡고 습하다. 세상 어떤 희망의 말도 닿지 않을 거긴, 누군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 자발적 유배지다. 그 안에서 노래인지 울음인지 구분되지 않는 소리가 들려온다. 삶의 뿌리가 뽑힌 듯 푸석거리는 그 소리는 머물지 못하고 끝없이 떠돈다.

그 소리의 주인이 김광석이다. 그로 인해 한국 대중음악은 '깊이'를 얻었다. 우린 그가 이끄는 깊이로 내려가 세상을 재이해한다. 그러므로 김광석은 끝없이 새롭게 불릴 수밖에 없다.

생(生)의 마지막 사랑인 듯 그가 노래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얼마나 아팠길래, 차마 사랑이 아니었다고 고개 젓는가. 모든 것이 떠나는 계절의 문 앞에서 "가을 새와 작별하듯" 실연을 맞닥뜨릴 때, 눈부시던 한낮의 맹세는 희미해지고 굳건했던 한 세상은 저문다.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는" 그 시간은 얼마나 사무쳤을 것인가. 그 슬픔을 다 쏟아내고 나면, 몸이 투명하게 텅 빌 것만 같다.

그러니 스러지는 별빛도 다음을 약속하지 않고 "아주 지는" 것이다. 가슴 밑바닥에서 차오르는 그 지극한 슬픔과 대면할 때, 우리는 삶과 사랑과 영속의 뜻을 다시 묻는다. 사랑만이 사람답게 한다는 말은, 사랑은 결국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 영원히 '부재(不在)'라는 운명적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 부재와 등을 맞대고 있어, 목숨은 뜨겁고 간절하다.

노래의 마지막은 슬픔을 목 끝까지 밀어 올린다. "우리 이제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슬픔을 단 한 번의 것으로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저 처절한 사랑은 도대체 어떤 것이란 말인가. 윤회의 저 아득한 시간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가망 없는 사랑의 슬픔이여.


그 슬픔을 이제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나는, 그 노래의 주인에게 당부한다. 오지 말기로 했으면, 사랑이 아닌 그 어떤 이름으로도 이 세상에 오지 말기를. 생멸(生滅)의 모든 인연을 거두고, 뜻 없이 사라지기를. 살아서 괴로운 그 무엇도 되지 말고 영겁의 시간 속에 묻혀 비로소 자유로워지길.

김광석

김광석을 그답게 만드는 것은 염세(厭世)다. 염세는 낭만적 태도의 한 극단이다. 김광석의 목소리엔 그것을 단순히 정신적 포즈가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들인 자의 좌절과 불안이 스며 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언제나 오선지 밖을 떠돈다. 음표와 기호로는 도저히 채보할 수 없는 수많은 무늬가 김광석의 깊이를 만들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바이브레이션 굵고 목청 좋은 평범한 포크 가수로만 기억됐을 것이다.

뽕짝류의 혐의가 있는 몇몇 노래들도 그의 몸을 통과하는 순간, 시적 도약을 이룬다. 그가 노래하기 전과 후, 세상의 미학적 질서는 근본적으로 바뀐다. 김광석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 그가 다시 불러 유명해진 노래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해보라.

가사를 쓴 류근 시인의 글은 말할 것 없이 빼어나지만, 그의 언어가 김광석의 목소리를 빌리지 못했다면 노래가 이토록 지극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아픈 절창을 얻기 위해서였다면 실연조차 기꺼운 것이었으리라.

그의 21번째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가 간 곳은 가을 새가 떠나간, 계절이 막다른 그곳인가. 홀로 돌아와 술잔을 마주하던 사랑의 기억은 레테의 강에 다 버리고 갔는가. 그의 노래가 있어 겨울이 깊어간다. 이주엽 작사가                                                    2016.12.17.

 

 

김광석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 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때
눈에 흘러 내리는
못다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 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아니었음을

가사가 너무 아픈 노래다. 지독히도 후회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동시에 정말 이 노래를 끝으로 정말 마지막 남은 미련 한 톨을 떠나 보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걸까..이 노래 가사는 그 어떤 기교도 필요없이 담담히 부르는 김광석 버전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왠지모를 뼈저린 고독감이 느껴져서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는 것 같고, 주황빛 조명 아래 소주 한 잔 걸치는 사연 많은 한 사람이 상상이 된다.

내 이야기일수도 있다. 예~전에 수없는 싸움 끝에 결국엔 헤어졌던 경험이 있는데,, 그 때 들었더니 고맙게도 그냥 내 마음이 한 방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길 바랬던 것 같다. 할만큼 했고, 더이상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너무 아픈 사랑은 / 사랑이 아니었을까? / 아니었기를 바라는걸까

최근에 발표된 "다시"라는 앨범에서는 빠진 곡이라 약간은 아쉬운 마음에 끄적여본다. 라이브를 한 번만이라도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면 참 많은 위로가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