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종점' '가슴 아프게'… "가사들이 한편의 시(詩)예요"

60~70년대 수많은 히트곡 작사… 정두수씨 노래시집 펴내

지금까지 3000여곡 작사 그 중 300편 엄선해 담아
"노랫말로만 알려진 가사 문학적 가치 주목받기를…"〈물레방아 도는데〉 〈과거는 흘러갔다〉 〈마포종점〉 등 1960~70년대 히트해 꾸준히 중·장년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수많은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 정두수(72)씨가 그간 노래로 불린 자신의 작품을 두 권의 노래시집으로 묶어냈다. 《시로 쓴 사랑노래》 《꽃핀 노래 사랑시》(도서출판 천산)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노래시집에는 정씨가 평생 쓴 3000여개의 노래 가사 가운데 300편이 실려 있다.

정씨는 "노랫말을 모은 가사집이 아니라 노래시집으로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은 내가 가사를 쓰고 남진이 부른 〈가슴 아프게〉를 비유법과 은유법을 적절히 배합한 '노래시'라고 정의했습니다. 일흔을 넘겨 뒤늦게 첫 시집을 묶은 것도 노랫말로만 알려진 가사의 문학적 가치가 주목받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정두수씨는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1년 〈공장〉이란 시로 등단한 시인이다. 그러나 형인 정공채(1934~2008) 시인이 "형제가 같은 일을 하기보다 서로 다른 길을 가자"고 권해 시인의 뜻을 접고 작사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부터 '정두채'라는 본명 대신 필명으로 활동했다.

정두수씨는 “휴대전화 연결음도 내가 가사를 쓴 히트곡을 고른다”고 말했다.
사진   덕훈 기자 leedh@chosun.com
 

마포종점 / 정두수 작사 / 은방울 자매 노래

흑산도 아가씨 / 정두수 작사 / 이미자 노래

정씨는 지금도 월 700만~800만원 정도의 저작권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 "100곡 이상의 내 노래가 여전히 공중파를 타고 노래방에서 불립니다. 비행기 음악채널, 영화 배경음악 등으로도 쓰이고요."

정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면 1980년대 빅 히트곡인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가 흘러나온다.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던 그 사람/ 혼자 남으니, 쓸쓸하네요/ 내 마음 허전하네요/(…)' 그는 "통화연결음은 막내딸이 주기적으로 교체해 준다"며 자식 자랑도 빠뜨리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마포종점〉이 흘러나왔다.

정씨는 이번에 노래시에 붙인 해설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명암을 돌이켜보기도 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로 시작되는 〈물레방아 도는데〉는 일제(日帝) 말 학병으로 끌려가는 막냇삼촌이 집 앞 징검다리를 건너다 안타깝게 뒤돌아보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쓴 작품이다. 〈흑산도 아가씨〉는 육영수 여사가 흑산도 아이들을 초청해 서울 구경을 시켜주고 청와대에서 학용품을 나눠줬다는 기사를 보고 썼다. 당초 〈흑산도 아이들〉로 제목을 붙이려 했지만 가수 이미자씨에게 주기 위해 고쳐서 발표했다. 〈공항의 이별〉에는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로 떠나가는 광부와 간호사들이 가족과 헤어지는 아픈 광경을 녹였다.

정두수씨는 "노래시를 통해 우리 현대사의 모습을 기록하려는 뜻도 시집에 담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2009.12.08.

 

1900년대의 마포 나루터

은방울 자매 하면 "마포종점" "삼천포 아가씨"를 떠올리게 되는데 노래는 아주 시원스럽게 자알 부르지만 잘 알려진 가수는 아니었죠
"마포종점"이란 노래는 60년대 마포종점의 비 내리는 쓸쓸한 밤 풍경과 기다려도 기다려도...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60년대 스타일로 노래한 곡입니다
밤 깊은 마포종점,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밤 전차 ! 밤 전차...란 대목이 노래 가사에 실려 있는것으로 보아 60년대는 서울에 전차가 돌아 다녔던것 같습니다
비에 젖은 전차는 종착역인 마포에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마포종점에 서 버렸다는 이야기 !
강 건너 영등포엔 불빛이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려서 무엇 하나  
첫 사랑 떠나간 마포종점은 서글프기만 한데...60년대는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하여 산업화 도시화 되어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처녀 총각들이 대도시로 몰려 들었다죠 ?
이때 너두나두...서둘러 서울로...서울로...향했고 그리하여 급기야는 서울의 인구가 갑자기 엄청난 숫자로 불어났다죠 ?
사랑하는 사람을 고향에 두고 서울로 올라가 고무신공장, 성냥공장, 방직공장 등에 취직하여 서울 생활을 하면서 늘 고향에 두고온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하던 시절 !

삼천포 아가씨 - 은방울 자매  

마포종점 / 정두수 작사 / 은방울 자매 노래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 간다
어린 나를 울려 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이제 가면 오실 날짜 일 년이요 이 년 이요
돌아와요 네에 ~ 돌아와요 네에 ~
삼천포 내 고향으로

조개껍질 옹기종기 포개 놓은 백사장에
소꼽장난 하던 시절 잊었나 님이시여
이 배 타면 부산 마산 어디든지 가련만
기다려요 네에 ~ 기다려요 네에 ~
삼천포 아가씨는

꽃 한 송이 꺾어 들고 선창가에 나와 서서
님을 싣고 떠난 배를 날마다 기다려요
그 배 만은 오건만은 님은 영영 안 오시나
울고 가요 네에 ~ 울고 가요 네에 ~
삼천포 아가씨는 ~   

은방울 자매


1954년 결성, 트로트풍 노래를 불러 독보적인 인기를 누렸던 팀.
박애경과 김향미는 1950년대부터 솔로가수로 각자 활동하다 나중에 팀을 결성, '쌍고동 우는 항구' '삼천포 아가씨' '무정한 그 사람' '마포종점' 등을 히트시켰다.
 
박애경씨(본명 박세말, 1937 - 2005)는 2005년 위암으로 별세

 

 

흑산도 예리항에서 오른쪽으로 쳐다보면 저멀리 가파르게 12번 굽이쳐 오르는 고개가 보이는데 이 고개가 12절재이다.
우리는 근 4시간을 소요해서 자전거로 흑산도를 한 바퀴(27km) 돈 다음에, 해가 상당히 기울어진 늦은 시각에 이 고개에 도착하였다.
이 고개에 올라서니 이미자의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우뚝 서있고, 애닯은 그 노래가 흑산도의 바람결을 타고 멀리까지 울리고 있었다.

흑산도 아가씨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

남 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만번 밀려오는데

못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네인가 귀양살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흑산도 아가씨는 고향이 흑산도인 아가씨가 아니라 지난 1960년대에 예리항에 와 있던 외지 아가씨들이다.
그 당시 북적대던 예리항의 각종 접객업소에 돈 벌러 온 아가씨이다.
과장된 얘기인지는 모르나 한 참 흥청댈 때는 400~5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죽을 수 없어서 절체절명적으로 삶을 잇기 위해서 여기에 온 여성들일 것이다.
지금이야 2시간의 뱃길과 4시간의 육로로 하루만에 서울 가는 것이 대수롭지 않겠지만, 당시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목포까지만 해도 뱃길이, 통통배로는 6~8시간, 범선으로는 12~2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실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들이 육지로 되돌아 나갈 수 있는 자유나 있었을까?
거칠고 거친 이곳에서의 생활,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 부모 형제자매와 고향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매일 밤 가위눌림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애닯은 흑산도 아가씨의 멜로디와 함께 이러한 생각이 나로하여금 숙소로 되돌아 올 때까지 가슴을 저미게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역시 죽지 않고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지구별이라는 또 하나의 흑산도에서 부질없이 무언가를 그리워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