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록 어머니 '원로가수' 백설희씨 별세

'봄날은 간다'로 가슴 적시던 여인, 봄날에 지다
50~60년대 최고 스타… 항상 곱게 보이려 했던 대중문화 名家 안주인"

         봄날은 간다 --- 백설희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산제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웃고 새가 울면 따라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드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는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 청춘을 회상케 하는 노래가 됐다. 청아한 목소리 속에 일렁이는 한(恨)을 담아 그 '봄날은 간다'를 불렀던 가수 백설희(본명 김희숙)씨가 5일 오전 3시 별세했다. 83세.

그녀는 연기파 배우인 고(故) 황해씨의 부인이자, 80년대 스타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이자, 인기 그룹 '티아라' 멤버인 전보람의 할머니였으며 무엇보다 전후(戰後) 한국인의 마음에 꽃을 던져준 타고난 예인(藝人)이었다.


봄날은 간다

샌프란시스코

아들 전영록씨는 "공연이나 방송이 끝나고 집에 들어와도 화장을 지우는 법이 없었던 어머니는 가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며 "늘 단아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셨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깨끗한 모습으로 보내 달라고 하셨다"고 했다. 전씨는 또 "작년 말부터 고혈압 합병증으로 고생하면서도 가족들을 만날 때면 늘 곱게 화장을 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언제나 볕 좋은 봄날처럼 살고자 했다.

           
1943년 일본강점기 최고의 예인 집단이었던 조선악극단에 입단하면서 연예인의 길에 들어선 백씨는 1949년 KPK악단이 만든 악극 '카르멘 환상곡'에서 주인공 카르멘 역을 맡으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예명 '백설희'를 얻은 것도 그때다. KPK 단장이던 유명 작곡가 김해송씨는 "에베레스트의 눈이 밤낮없이, 여름 겨울 없이 녹지 않고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듯 연예인으로서 높은 곳에서 식지 않는 열정으로 빛나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지어줬다. 이후 6·25 전쟁 직전 새별악극단에 들어간 그녀는 배우 고(故) 황해(본명 전홍구·2005년 작고)씨를 만나 결혼, 평생을 함께했다.

 

▲ 5일 어머니이자 선배 가수인 백설희씨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잠긴 아들 전영록씨. 아래 사진은 1992년 전영록씨가 부모인 고(故) 황해(사진 왼쪽)씨, 백설희씨와 함께 노래한 곡들을 담은 음반의 재킷. /연합뉴스

1953년 최고의 작곡가 고(故) 박시춘씨를 만나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는다. '카르멘 야곡', '물새 우는 강 언덕', '청포도 피는 밤', '코리아 룸바' 등 수많은 히트곡이 두 사람의 조화 속에 탄생했다. 하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아직도 생생한 현재적 의미를 지닌 최고의 노래는 '봄날은 간다'이다. 1953년 대구 유니버샬 레코드를 통해 발표된 이 노래는 한국전쟁 이후 남편과 가족을 위한 희생에 심신(心身)을 던져야 했던 당시 여성들의 애상(哀想)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 노래의 생명력은 후배 가수들이 앞다퉈 증명했다. 이미자·조용필·나훈아·하춘화·최헌·이은하·이동원·심수봉·장사익·한영애 등이 리메이크했다. 허진호 감독은 동명(同名)의 영화를 만들었다. 얼마 전 계간지 '시인세계'가 시인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을 조사한 결과, 압도적 지지를 받아 1위에 오른 것도 '봄날은 간다'였다.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씨는 "격변의 역사를 견뎌내며 살아가던 한국의 고전적 여인상이 절묘하게 표현된 노래가 바로 '봄날은 간다'"라며 "백 선생님의 목소리엔 심금을 울리는 독특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 외에도 '목장 아가씨',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하늘의 황금마차' 등을 히트시키며 50~6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황해씨와의 사이에 전영록 등 4남 1녀를 둔 고인은 3대가 모두 연예인인 대중문화 명가(名家)의 안주인이었다. 손녀인 전보람은 "손자·손녀들이 '백설공주'라고 불렀던 우리 할머니는 제 기억 속에 언제나 예쁘고 고운 모습"이라며 "TV에 나오는 저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셨다던 말씀을 듣고 무척 뿌듯했었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7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삼성공원이다. (02)3010-2265

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2010.05.06. 기사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