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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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이 본 6.25와 서울
AP통신이 본 6.25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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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AP통신이 본6.25와 서울The Korean War and Seoul3년 1개월의 6.25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아픔을 안겨중덨고 가족과 보금자리 등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AP통신 특파원과 사진작가 김한용이 기록한 당시의 사진들은 그 아픔과 함께 당시 격변의 현장 서울의 모습과 서울 사람들의 삶을 함축하여 보여줍니다.6.25전쟁으로 인한 치열한 시가전투, 폐허로 변해버린 서울 도심, 삶의 터전을 잃고 헤메는 시민들, 그런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시민들의 재건 의지까지 사진속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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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_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이 걸린 건물 앞에서 시가전을 벌이고 있는 연합군 195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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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_1950년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까지 계속된 전쟁은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낳았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국군 사망자는 13만 7천 899명, 부상자는 45만 742명, 포로는 8천 343명에 달했습니다. 북한군은 훨씬 피해 규모가 컸으며 전쟁에 참가한 유엔군과 중공군의 인명 피해도 많았습니다. 전쟁은 무수히 많은 민간인의 생명도 앗아갔습니다. 남한 지역 사망자는 24만 4천 663명에 달하며 북한 지역은 28만 2천명, 양민 학살로 숨진 사람도 12만 8천 936명이나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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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_시가전으로 폐허가 된 서울 도심 195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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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_서울 탈환을 위한 치열한 전투 195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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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 서울 탈환을 위한 시가전 195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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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_ 부상자를 옮기고 있는 군인들 1950.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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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 부서진 건물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는 아현동 인근 195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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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서울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 행렬 1951.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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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중공군의 공격을 피해 한강 부교를 건너는 피난 행렬 195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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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전쟁 중에 철모는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95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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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중앙청에서 열린 서울수복 기념식 1950.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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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_중앙청에[ 유엔기를 게양하고 있는 군인들 195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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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휴전반대 시위 / "통일 아니면 죽음을 달라." 1953년 4월 판문점에서 미국과 북한, 중국이 막바지 휴전협상을 하고 있는 동안 서울에서는 대규모 휴전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195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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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_중앙청 앞 휴전반대 시위 / "통일 아니면 죽음을 달라." 1953년 4월 판문점에서 미국과 북한, 중국이 막바지 휴전협상을 하고 있는 동안 서울에서는 대규모 휴전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195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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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_전쟁으로 인한 피해지역을 표시한 지도이다. 6.25와 1.4후퇴 때의 피해구역이 구분되어 표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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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폐허로 변환 명동, 충무로 일대 195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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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_김한용의 6.25 사진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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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파괴된 서울 / 사진작가는 환도 이후인 1954년 4월, 피난 보따리를 다시 싸서 마포구 대흥동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서울의 요소 요소가 와전히 폐허가 되어 있는 광경이 눈에 띄어 촬영하였다. 마포의 한 동네로 추정된다. 1953년 | 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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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_폐허 속 명동성당 / 사진작가는 충무로 2가 세종호텔 후면 길을 가다, 파괴된 건물 사이로 보이는 명동성당이 참 아름다워 '전쟁의 흔적'이라 명하고 촬영하였다. 1954년 | 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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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_파괴된 서울 / 전쟁 직후 서울은 파괴된 면적이 절반이 넘어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영등포의 어느 길가로 추정된다. 1953 | 김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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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_포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아이들과 엄마 195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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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_풍선껌을 부는 미군과 소년 1952.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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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_치열한 전투 후 총과 철모를 벗고 중앙청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미군 1950.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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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_전쟁 중 부모를 잃은 고아 1951.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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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_전쟁 중의 여심 / 미공군기에 탑승하여 중공군을 상대로 심리전 방송을 하는 여성으로 휴식시간에 화장을 하고 있다. 1952.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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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_전쟁복구에 참여한 시민 / 남녀 노동자들이 부서진 건물 잔해에서 재활요 할 수 있는 벽돌을 찾고 있다. 195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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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_부서진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있는 군인과 노동자들 195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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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의 지원으로 건설된 성북동의 공동주택단지 / 6.25 전쟁 직후 부족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헤 외국의 원조를 받아 '부흥', '재건' 등의 이름을 붙인 많은 주택들이 건설되었다. 195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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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_지게에 아이와 짐을 지고 길을 거너는 아버지 / 멀리 중앙청 건물이 보인다. 1951. 4. 25
촬     영 : SONY DSC-RX10M2     2016-06-17
전시 장소 :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전시 기간 : 2016-06-04~201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