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닭의 해… 사악한 기운 몰아내고 국가 안녕 기원, 폭 5미터 수탉 연을 하늘로 올리다
네모 반듯한 방패연, 예의 바른 한국인 상징
수탉이 홰를 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삭풍에 목도리를 고쳐 매는 사이 폭 5m의 날개는 점이 되었다.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 서울 광진구 광나루 '한강 드론 공원'에서 수탉 모양 창작 연(鳶)이 하늘로 떠올랐다. 리기태(67) 한국연협회 회장이 고안했다. 연은 음력 12월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날리고 대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는 것이 우리 풍속이다.
 리기태 ‘태양의 새’. 닭은 광명을 알리는 상서로운 새다. 수탉(오른쪽)과 암탉이 오동나무 가지 옆으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있다. / 리기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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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에는 "액연(厄鳶) 띄운다"며 연에 '액(厄)'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액을 보내고 복을 구함)'이라고 쓴 연을 날려보냈다. 조상은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닭이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여겼다.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음력 12월 1일이었던 지난달 29일, 드론 대신 연을 날리며 가내 평안, 국가 안녕을 기원했다. 하늘에 희망을 띄워 올렸다.
◇인간사와 함께한 연
 이종복 ‘수리당가리연’. 임진왜란 당시 신호를 주고받는 데 쓰였다는 연(신호연)을 복원했다. |
인간이 연을 만들어 날린 역사는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부터 중국에서 연날리기를 시작했다. 묵자(墨子)와 한비자(韓非子)에 연을 날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 다른 학자들은 동남아시아 도서 지방에서 배의 돛이 바람에 날아오르는 데 착안해 연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연을 날렸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647년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이 즉위하자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고, 김유신 장군이 연을 이용해 이 반란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은
임진왜란·정유재란에도 쓰였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신호연을 만들어 병력끼리 연락을 취했다. 삼봉산 문양의 연을 띄워 날리면 삼봉산에 모이라는 뜻이고, 삼각형을 2층으로 크게 그려넣은 연(기바리눈쟁이연)을 띄우면 왜적과 백병전으로 맞붙어 싸우라는 뜻이었다고 전한다.
흔히 동양에서만 연을 날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은 인류 공통의 유산이다. 미국에서는 100달러 지폐에 얼굴을 올린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연날리기로 유명하다. 그는 번개 치는 날 연을 날리면서 번개가 전기로 이뤄져
있음을 발견했고 피뢰침을 고안했다.
 서울 북촌한옥마을에 있는 리기태 선생의 공방. 전통연, 신호연, 민화가 그려진 연 여러 점이 한옥을 화사하게 했다. 그는 연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
프랑스, 그리스 같은 유럽 국가, 브라질, 칠레 같은 남미 국가에서도 연날리기가 성행한다. 2014~2015년엔 한국·카타르 수교 40주년을 기념해 현지에서 한국 전통 연날리기 행사를 한 것도 이런 맥락. 리기태 한국연협회 회장은 “연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농경사회인 인도네시아 연은 물소 형상을 띠는 점이 특징이에요. 한국의 연은 대체로 네모 반듯합니다. 이는 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의가 바르고 천성이 올바른 것을 의미합니다.”
◇방패연·방구멍연… 우리 전통연
우리나라 연은 방패연이라고 잘 알려진 방구멍연과 가오리연 두 종류가 있다. 흔히 가운데 둥근 구멍이 있는 장방형의 원을 방패연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부정확한 표현이 정착한 사례다. 둥근 구멍이 없는 네모 반듯한 연이 방패연, 연의 한복판에 둥글게 뚫은 구멍(방구멍)이 있는 연은 방구멍연이다. 영국 왕립식물원에 있는 현존 한국 최고(最古) 연인 ‘서울연’, 이순신 장군이 날렸다는 신호연 모두 방구멍연으로 분류된다.
2012년 서울연을 전통 방식으로 재현한 리기태 선생은 “‘서울연’은 장방형 형태지만 다른 방구멍연과 달리 양쪽에 꼬리가 있다”며 “꼬리는 연의 균형을 올바르게 잡아줘서 연이 하늘 높이 올라가게 해 주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전통연 제작 방법을 물었다. “‘서울연’의 원형은 ‘홍치마 먹꼭지연’입니다. 댓살을 붙이는 풀은 쇠가죽으로 만든 동물성 아교와 해초, 고구마, 감자 전분으로 만든 식물성 두 종류를 썼습니다. 댓살을 붙일 때의 순서는 머릿살부터 장살, 중심살, 허릿살 순서로 위에서부터 붙여 내려갑니다. 그림 채색은 소목(蘇木·콩과에 딸린 상록 교목으로 적색을 얻는 천연 재료)을 물과 함께 끓여 만든 식물성 천연 물감과 먹을 갈아 검정인 흑색을 만들어 사용했죠."
전통연을 만들 때 댓살은 보통 고황죽(枯黃竹), 백간죽(白簡竹)을 사용한다. 종이는 닥나무로 만든 창호지. 대를 가늘게 쪼개 뼈대를 만들고, 종이를 모양새에 맞게 오린 다음 그곳에 대를 교차해 붙인다. 그 위에 자신이 원하는 무늬를 그리거나 색칠하여 연을 꾸미고, 귀퉁이와 가운데 댓가지에 줄을 달아 가운데에서 균형을 맞춰 매듭을 짓는다.
리기태 선생은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연을 만든 조선시대 전통 방패연 제작 원형기법 보유자다. 할아버지 이천석 선생, 아버지 이용안 선생을 이어 3대째. “여섯
살 때부터 연과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에 연을 날리기 시작했어요. 연을 보고 있으면 ‘하늘은 모두 내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현실의 걱정이나 잡념은 사라지고 하늘처럼 높은 꿈을 꿀 수 있어 한평생 연에 빠졌죠. 연날리기는 ‘하늘의 기운을 받는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는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방패연을 만들었다. 그는 스스로를 연인(鳶人)이라고 부른다. 연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1 그림 그리기-한지에 댓살을 붙이기 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초보자라면 댓살을 붙인 뒤 그림을 그리는 편이 안전하다. 2 댓살 다듬기-댓살은 일직선으로 곧고 균일하게 다듬는다. 댓살 두께, 대나무 마디 위치가 제각각이면 연이 공중에서 균형을 잃고 빙글빙글 돈다. 3 댓살 붙이기-댓살은 머릿살, 장살(대각선 방향), 중심살(세로 방향), 허릿살 순으로 5개를 붙인다. 4 목줄 매기 - 목줄은
머릿살 오른쪽·왼쪽, 중심살 아래·위 순서로 매고 한데 묶어준다. 목줄을 얼레에 감긴 실과 연결해 날린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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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연 걸어두면 액운 피해”
연줄을 끊어 액운과 함께 연을 날려 보내는 풍습은 농경시대의 전통으로 보인다. 농번기에 연날리기를 하면 농사에 지장을 줄 것으로 보고, 농한기인 음력 12월부터 정월대보름까지만 연을 날렸다는 것. 액막이를 이유로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연날리기를 끝내고, 다시 농사 준비를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연줄을 끊어 날려 보내면 쓰레기 투기꾼이 되는 게 현실이다. 송액영복이라 적힌 연을 산책하다 발견한 사람은 ‘남의 액운을 대신 받았나’
하는
생각에 불쾌할 수도 있겠다. 리기태 선생은 ‘송액영복’ 대신 ‘근하신년’을 쓴 연을 집에 걸어두면 액막이 효과가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폭죽(爆竹)을 터트리는데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폭죽은 원래 대나무를 터트리는 데서 시작한 겁니다. 귀신이 대나무를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연도 대나무로 만들지요.” 한반도에도 ‘낙화불’ ‘대나무재 태우기’ 라는 이름으로 대나무에 화약을 넣어 터트리며 귀신을 쫓아내는 민간 세시 풍속이 있었다. 지난 2일 찾았던 서울 북촌한옥마을 내 그의 전통연 공방에는 벽이며 대들보 곳곳에 연이 걸려
있었다. “내 한 몸 건강하고 자식 농사도 잘 지었으니 효과 만점입니다.” 그가 활짝 웃었다.
양지호 기자 201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