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올림픽]

언제 들어도 눈시울 젖는 가락… 모두 말렸지만 민유라의 선택은 옳았다

코치 "심판에 생소한 음악" 만류… 민유라 "한국 알리고 싶어" 고집
경기 중 노래 부르며 연기하자 관중도 함께 따라부르며 감동
아이스댄스서 한민족의 恨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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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라와 알렉산더 겜린이 20일 아이스댄스 프리 댄스 연기를 펼치는 모습. 재미교포인 민유라는“태극 문양을 단 것은 코리안 프라이드(한국인의 자랑)”라면서“완벽한 연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이 자리까지 온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민유라(23)와 알렉산더 겜린(25)이 빙판에 등장해 하얀색 트레이닝 재킷을 벗자 한복의 느낌을 살린 의상이 드러났다.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함성이 터져나왔다.

◇올림픽 무대에 울려퍼진 '아리랑'

20일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댄스 종목의 프리 댄스 경기에 나선 둘은 가수 소향이 부른 '홀로 아리랑'에 맞춰 연기를 시작했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라는 부분은 민유라와 겜린이 올림픽 무대에 서기까지의 힘겨웠던 과정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아리랑'은 선곡 당시부터 논란을 낳았다. 주변의 여러 코치들이 '외국인 심판들에게 생소한 곡을 아이스댄스 종목의 프리 댄스 배경 음악으로 삼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큰 선택'이라며 말렸다고 한다. 심판들은 선수들이 음악을 얼마나 이해하고, 표현하는지를 중요한 채점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많은 선수가 잘 알려진 곡들을 사용한다.

재미교포인 민유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많은 사람에게 한국을 알리고 싶다"며 끝까지 아리랑을 고집했다. 1995년 광복절(8월 15일)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이민 2세 민유라는 우리말을 유창하게 한다. '넌 한국 사람이고, 한국말·한국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이다. 파트너인 겜린은 미국인이지만 올림픽에 나가고 싶은 열망을 이루려고 작년 7월 특별귀화 형식으로 한국 국적을 얻었다.

◇단체전 땐 의상 벗겨질 뻔하기도

2015년 여름 무렵 호흡을 맞춘 둘은 작년 9월 자력으로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그러나 아리랑을 선보일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개인전 쇼트 댄스에서 24팀 중 20위 안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회 전엔 홀로 아리랑의 가사 중 '독도야 간밤에 너 잘 잤느냐'는 부분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해당 부분의 노랫말(3초 분량)을 삭제한 음원을 준비했다.

둘은 앞서 열렸던 단체전 쇼트 댄스 때 개인 최고점(61.97점)보다 10점 정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민유라의 의상 뒤쪽 고리(후크)가 풀러지면서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다. 개인전에서 20위 이내에 들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민유라와 겜린은 19일 쇼트 댄스에서 삼바·룸바 선율에 맞춰 개인 최고점에 가까운 61.22점을 받으며 16위를 했다. 성격이 쾌활해 '흥유라'로 불리던 민유라도 점수를 확인하는 순간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프리 댄스에 나가 아리랑을 연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함께 넘어 온 고개… 베이징도 간다

둘은 프리 댄스에서 아리랑으로 한민족의 '한(恨)'을 몸으로 그려냈다. 중반 이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가락이 나오자 민유라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많은 관중도 이 대목에서 합창을 했다. 4분 7초간의 아리랑 여정이 끝나자 박수와 태극기가 아레나를 채웠다. 민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겜린을 끌어안았다. 점수(147.74점)와 순위(18위)는 숫자에 불과했다. 인터넷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피겨 경기를 보며 이렇게 울긴 처음이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민유라는 "연기 막판에 관중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울컥했다"고 말했다.

감동을 선사한 두 사람의 무대는 이번이 끝이 아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4년 남았어요. 한국 곡으로 다시 연기하고 싶습니다."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 민유라/겜린 주요장면

강릉=이순흥 기자                                                     2018.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