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179㎝… 도쿠가와 추모 그림도 이 佛畵 베꼈다

日서 모사한 그림 3점이나 돼… 그만큼 이 그림 중히 여겼다는 뜻
기존 고려불화보다 훨씬 커 고려불화는 작다는 인식 바꿔

일본 교토 북쪽의 유명 사찰이 소장한 14세기 전반 고려 불화가 국내 학계에 처음 공개됐다. 고려 불화 권위자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는 "일본 천태종의 본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가(滋賀)현 오쓰(大津)시의 사찰 엔랴쿠지(延曆寺)가 소장한 고려 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阿彌陀八大菩薩圖)'를 지난 2월 현지에서 정밀 조사했다"며 "164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추모 법회 때 쓰인 그림 등 17세기 일본 불화 3점이 이 고려 불화를 모사(模寫)한 그림임이 새로 밝혀졌다"고 했다.

일단 크기가 압권이다. 가로 88.8㎝, 세로 179㎝. 정 교수는 "고려 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미국 프리어새클러 갤러리에 소장된 그림에 이어 둘째로 크다"고 했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는 대부분 세로 130㎝ 정도다. 그는 "고려 불화는 작다는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했다.

고려불화 걸작 '아미타팔대보살도' 첫 공개… 日 3大사찰 엔랴쿠지 소장  일본의 3대 사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가(滋賀)현 오쓰(大津)시의 유명 사찰 엔랴쿠지(延曆寺)가 소장한 14세기 전반 고려 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阿彌陀八大菩薩圖)’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고려 불화 권위자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는 지난 2월 현지 정밀 조사를 통해 이 그림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가로 88.8㎝, 세로 179㎝. 크기가 압도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최상급 고려불화다. 정 교수는 “164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25주기 추모 법회 때 쓴 일본 불화가 바로 이 고려 불화를 모사한 그림이다. 그만큼 일본에서 중요하게 여긴 고려 불화”라고 했다. / 정우택 교수 제공

보존 상태가 매우 좋고 일부 수리를 했지만 색상이 선명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정 교수는 "2008년 이 그림 실물을 처음 봤다. 사찰 측의 수리를 거쳐 2010년 오쓰시 역사박물관 특별전에 잠깐 전시된 적이 있으나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이 불화의 존재를 아는 연구자가 없었다"며 "올해 2월 재조사를 했고 사찰 허가를 받아 조사 성과를 공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 그림을 원본으로 해서 일본에서 17세기에 모사한 그림이 3점 있다. 도치기현 닛코(日光)시에 있는 사찰 린노지(輪王寺)의 '아미타팔대보살도', 미타니게문고(三谷家文庫)의 '아미타팔대보살도'와 후타고지(兩子寺)에 소장됐던 '아미타팔대보살도'다.

164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25주기 법회 때 쓴 일본 불화(왼쪽)는 고려불화를 모사한 그림이다. 오른쪽 위가 그 원본 그림인 14세기 고려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엔랴쿠지 소장). 아래는 도쿄예술대 소장 고려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로 엔랴쿠지 소장본과 도상이 거의 똑같다. /정우택 교수 제공

특히 린노지 불화는 1640년 4월 린노지 내부 도쇼궁에서 열린 도쿠가와 이에야스 25주기 법회 때 도쿠가와를 추모하고자 사용된 그림이다. 도쇼궁은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 시대를 연 도쿠가와가 1616년 죽자 그를 신으로 모시기 위해 이듬해 건립된 신사로, 린노지에 속해 있다. 정 교수는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 일부와 색채 감각이 다르지만 본존의 착의법, 복식과 장신구의 형상, 옷 주름까지 거의 원본과 동일하다"며 "특히 세 그림 모두 엔랴쿠지 불화와 똑같이 관음보살이 버드나무를 그릇에 담지 않고 나무줄기가 오른쪽을 향하게 들고 있다"고 했다.

엔랴쿠지 고려 불화의 도상은 도쿄예술대학이 소장한 '아미타팔대보살도'와 거의 같은 형식이다. 도쿄예술대학 소장본은 이미 알려진 고려 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 14점 중 유일한 도상으로 주목받은 작품. 흔히 '아미타팔대보살도'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앞줄 중앙에 배치돼 있는데 특이하게도 도쿄예술대 소장본과 이 그림은 둘째 줄에 있다. 또 나머지 그림에선 관음보살이 두 손을 모아 정병을 잡고 있는 반면, 이 두 그림은 오른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정 교수는 "다만 도쿄예술대 그림은 버드나무 줄기와 잎이 그릇에 담겨 있고 이 그림은 버드나무 가지가 그릇에 담기지 않고 오른쪽을 향해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정우택 교수는 이런 내용을 18일 동국대 개교 110주년을 기념해 동국대에서 열리는 동악미술사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엔랴쿠지 고려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관음보살을 확대한 모습. 관음보살이 오른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으며 나무줄기는 오른쪽을 향해 있다./정우택 교수 제공

도쿄예술대 소장 고려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관음보살을 확대한 모습. 관음보살이 오른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고 나무줄기와 잎은 왼손에 든 그릇에 담겨 있다. /정우택 교수 제공

고려불화를 모사한 린노지의 일본 불화 '아미타팔대보살도' 중 관음보살을 확대한 모습. 관음보살이 오른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고 나무줄기가 오른쪽을 향해 있는 것이 엔랴쿠지 소장 고려불화와 똑같다. /정우택 교수 제공

☞고려불화

현존 고려불화 160여점 중 130여점이 일본에 있다. 국내에 있는 10여점은 최근 외국서 구입한 것이다. 섬세한 형태, 붉은색·녹색 등 원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채의 조화, 호화로운 금니(金泥)의 사용,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선묘(線描)는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미의 세계를 창조했던 고려인의 높은 품격을 보여준다.

허윤희 기자                                                              201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