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Home Issue
PROLOGUE

어디 올릴 때가 없나 ?
아무리 찾아도 갈길이 없다.
자료 정리전에 우선 보이고 싶은데..
글이고, 사진이고,
음악도 좋고.............
보이고픈 데이터는 다 올리자 !
정리되고 나면 삭제하려무나.

 Joseon Period Intellectual
조선시대 지식인
작성자 박형준 교수
작성일 2014-08-03 (일) 14:49
ㆍ추천: 0  ㆍ조회: 750      
IP: 175.xxx.209
지식인들, 사제적 태도·훈육사적 기질 갖기 쉬워

박형준 교수 ‘당대비평’ 에 지식인 비판 기고

  
박형준 교수는“촛불시위부터 파병 문제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특정 의견을 도덕적 판관의 결정으로 간주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전후해 촉발된 한국 사회의 주류(主流) 논쟁과 관련, 박형준(44) 동아대 교수가 주류 지식인과 비판적 지식인의 한계를 아울러 지적하면서, ‘성찰적 지식인’상(像)을 제시하고 나섰다. 지난 주말 발간된 ‘당대비평’ 특별호에 실린 글 ‘지식인, 너의 이름은?’을 통해서다. 고려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비판적 학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해온 연구자다.
박 교수는 먼저 주류 지식인들이 경제 발전과 근대화에 기여했다며 이들의 공로를 인정한다. 이들은 ‘발전’과 ‘경쟁력’을 실질적 가치로 내면화해왔고, 이를 위해 효율적인 경영과 관리에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주요한 덕목으로 삼아왔다는 것. 하지만 주류 지식인들은 지역주의와 결합된 학교 연고주의를 통해 특권 구조를 재생산해왔다고 비판한다.
박교수는 민주화와 체제 개혁을 핵심가치로 삼고, 경영의 논리보다 운동의 논리에 충실하려고 했던 비판적 지식인들이 민주화를 실현시킨 집단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지나친 자기확신과 ‘세습적 희생자 의식’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것. 오류의 가능성을 잘 인정하지 않고, 민주화 투쟁에 서지않았던 사람들을 ‘개혁 대상’으로 쉽게 몰아버리려는 경향은 여기서 기인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론과 진리를 다룬다고 믿는 지식인일수록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이런 태도는 자신이 알고있는 진리를 누구에게 알려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사제(司祭)적 태도와 사물이 자신이 정리한 틀에 의해 정리되는 것을 좋아하는 훈육사적 기질을 배양하게 된다. 결국 지적 문화적 천박화와 복합적 문제를 단순화함으로써 위험한 문제해결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민주화 이후 정권 교체가 수차례 일어나면서 체제순응적 지식인과 비판적 지식인 사이에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비판적 지식인 역할을 옹호했던 한완상 교수가 장관에 임용되고 70~80년대 노동운동을 대표했던 방용석 이태복씨가 장관을 역임하는 등 운동권 출신들의 ‘주류화’ 경향이 꾸준하더니 급기야 노무현정권에 이르러 ‘운동권의 청와대 장악’이란 표현이 있을 만큼 운동권 지식인들의 제도권 진입이 진전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류와 비주류의 뒤섞임 결과로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운동’ 논리와 ‘국가 경영’ 논리의 충돌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 운동 논리는 ‘대립각’을 세워 이분법적 적대의 구조를 명확히 함으로써 조직적 자원 동원을 상대적으로 손쉽게 해낸다. 이에 반해 국가경영 담론은 기본적으로 체계를 운영하고 발생된 문제들을 정책적으로 해결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서로 다른 이익들과 견해들을 조정하는 논리가 더 많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둘 사이의 딜레마와 긴장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 것인가가 참여정부에서 말하는 ‘참여’의 성격을 규정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제시하는 지식인상은 성찰적 지식인상이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늘 무게를 두는 지식인, 그리고 나르시즘에 빠지지 않고 자기 지식을 실천적으로 구성해보려고 노력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과거 저항과 투쟁을 했던 지식인들이 권력자의 위치에 올랐으면서도 희생자 의식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같다”며 “이런 희생자 의식을 버려야 토론이 제대로 이뤄질 수있다”고 했다.
金基哲기자                               2003/04/14-00
  0
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