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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형준 교수 글 전문
ㆍ작성일	2014-08-03 (일)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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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너의 이름은?

지식인들은 진리의 수호자라는 자기 확신을 빨리 벗을 수록 좋다. 이제야 복합성의 수준에 도달한 새로운 언어로 진리와 오류와 신화의 문제를 스스로에게 제기해야 하며, 앞으로는 진실을 위한 투쟁은 무엇보다도 오류를 위한 투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에드가 모랭(Morin,1982)
1. 지식인은 누구인가. 지식인이란 개념은 그 역사적 뿌리와 관련해서 볼 때 진리를 구성하는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전통 사회의 초기에 그들은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마법사의 역할을 맡았고, 이후에는 종교적으로 확립된 진리를 설파하는 사제의 역할을 수행했다. 어쨌든 그들은 진리를 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었다. 근대와 들어와 지식인은 ‘이성’이라는 신화를 신봉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식인은 이념과 지식을 만들고 다루는 사람들로, 특수한 사회적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는 지식인의 시대였다. 그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주도했고, 사회정치적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었다. 이들 지식인들은 ‘진리의 수호자’를 자임했다. 자신의 진리를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고, 많은 청중들과 대중들을 자신의 줄에 세워 자신과 운명을 같이 하도록 선동했다. 20세기의 놀라운 문명화 과정 한 가운데는 지식인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또한 이 시대의 모든 홀로코스트의 뒤에 지식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식인은 “전쟁은 아름답다”고 외친 마리테니가 될 수도 있고, “모든 혁명은 숭고하다”고 생각한 체 게바라가 될 수도 있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바보가 되시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현실의 온갖 조건과 지식의 가능성을 점검한 결과 참된 지혜라는 목표는 영원히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지적 작업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바보가 되어 믿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식인은 이 ‘바보가 된 사람들’이다.
자크 아탈리(Attali,2001)는 지식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세상의 광기를 자유롭게 관찰하는 사람, 확산시키기 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지배하기보다는 매혹하려고 애쓰는 사람, 순응주의에서 벗어난 사람,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있는 사람, 눈먼 확신의 속죄양”. 이런 지식인의 정의는 지극히 프랑스적이다. 프랑스의 독특한 지성사와 정치 문화속에서 지식인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 늘 앞서 고민하고 어떤 문제가 발견되면 용기를 가지고 일갈을 내뱉는 그런 유형의 인간으로 상정된다. 지성적 토론을 좋아하고, 지식인의 비판과 참여를 중시하는 정치 문화 속에서 지식인은 일정한 문화적 특권을 누려왔다.
이 특권 때문에 “지식인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질문이 시대를 달리해서 계속 제기되어 왔다. 사르트르에 의해 1950년대에 주어진 그 질문과 부르디외에 의해 1990년대에 제기된 그 질문은 사실 본질적으로 똑같은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비판이 없는 지식인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데올로기와 신화의 허위를 벗겨내는 비판적 지식인의 상을 정립하려는 정치적 시도와는 달리 체계론적으로 지식인을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지식인을 사회 체계에서 특정한 기능과 역할을 맡고 있는 하나의 사회적 범주 또는 층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앤서니 기든스(Fiddens,1991)는 이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사회 전체의 합리화를 지향하는 근대화는 전문 지식의 체계화를 매개로 해서 시간과 공간을 재조직한다. 전문 지식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추상적인 코드의 체계로 만든다. 직접적인 대면관계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원격의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표준적인 시간과 추상적인 코드를 매개로 수행하는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전문 지식의 체계화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 전문 지식의 체계화를 통해 각양각색의 현대적인 제도들-조세,행정,국방,과학,교통,통신,건설,국제관계,미디어,의료,복지 등-이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일상생활은 이 전문 체계에 대한 의존을 통해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예를들어 부산에서 아침에 출발해 낮에 서울에서 일을 보고 저녁에 돌아오는 스케줄을 오차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상,교통,항공,통신,언론 등 각 전문체계가 정상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실행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식인이란 이 전문 체계를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지식과 기술의 제공자이자 운영자를 의미하나.
이렇게 사회적 범주로 파악된 지식인은 네가지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맡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전문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기능이고, 둘째는 전문체계 또는 그와 연관된 사회 체계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성찰적 기능이며, 셋째는전문 지식들을 일상 생활 속에 끊임없이 내려보내 시민들을 학습시키는 기능이다. 이것은 일상의 비전문가들이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접촉 면적을 확대할 수 있게 하고, 시민들의 성찰적 능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셋째는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전문 체계의 위상을 높여 주는 사회적·정치적 역할이다. 지식인 자신이 특수한 이해관계를 지니고 분투할 수록 전문 체계의 위상은 강화되는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 서든, 체계론적 관점에 서든, 지식인은 그 자체로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지배와 권력의 핵심 담당자로서 부르디외(Bourdieu,1992)의 표현을 빌자면 사회적 문화적 자본을 소유하는 집단이며, 다른 한편으로 체계를 개선하고 바꾸어내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는 매개 집단이다. 대체로 이 이중적 성격은 지식인 전체에 공통적으로 체현되어 있는 이중성이기도 하지만, 실제의 사회 현실에서는 이 두 모습이 분화되어 체제순응적 지식인과 비판적 지식인, 또는 지배계급적 지식인과 민중적 지식인 또는 보수적 지식인과 진보적 지식인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후자의 구분은 계급 간의 정치적 대립이 심화되거나, 반독재 투쟁과 같이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이 모든 갈등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경우에 특히 강조되어 왔다. 이러한 구분은 순응적이냐 탈규범적이냐, 이데올로기적이냐 비판적이냐, 권위를 누리려 하는가 봉사하려하는가, 국가지상주의냐 민중지상주의냐는 구분으로도 보완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에 의존하기에는 오늘의 사회가 너무 복합적이고, 지식인 범주 자체가 너무 대중화되었다. 무엇보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진전으로 사회의 전문 체계화는 훨씬 광범위하게 그리고 훨씬 조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특정한 장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장소 귀속성을 탈피하는 원격 공간에서의 전문 체계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과학과 기술을 포함하여 지식에 대한 의존도는 심화되고 있고, 이 지식을 다루는 전문가, 상징분석가, 지식근로자의 수도 늘고 있다. 넓게 보면 지식인은 더 이상 소수의 집단이 아니다.
다종다양한 전문 체계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 주요한 사회적 범주이다. 오히려 지금은 사회 경제적으로 지식인 내의 분화와 격차, 예를 들어 상층 지식근로자와 하층 지식 근로자의 격차를 주목해야 하는 형국이다. 상층의 지식 근로자들은 점점 더 많은 자원들을 동원하고 보유하는 한편, 하층의 지식 근로자들은 특권과는 거리가 멀고, 일부에서 지식프롤레타리아트라고 명명할 만큼 관행적 노동자층에 머물고 있다. 상층 지식근로자와 하층 지식른로자의 차이를 과소 평가하지 않는 것이 지식 정보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한편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의 민주화와 전문 지식의 일상화 현상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과거 지식인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사회학적 상상력과 정치적 해석 및 비판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지난 대선이 끝난 직후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정보를 갖고 민주당 살생부를 만들었던 사람이 용접공이었고, 그가 인터넷을 통해서 그 정보들을 얻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정치적 판단과 의견을 형성하는데 지식인과 일반 시민들의 격차가 줄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을 문화적 선각자 또는 계몽적 비판자로 간주하는 이미지는 현실과 점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층 지식근로자의 경우 사회적으로 특혜적 지위에 있는 ‘기능적 전문가’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2. 비판과 참여, 한국 지식인의 정치적 딜레마한국은 지식인 지배 사회이다. 조선 시대에도 주자학과 ‘사농공상’의 원리에 따라 선비들과 그들의 사제적 지식이 권력의 정치를 의미하는 ‘權’과 사회의 운영을 의미하는 ‘經’의 중심에 있었다. 선비와 지식인을 우대하는 전통은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의 교육열을 설명하는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 한국은 출세와 교육 지식 수준의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나라이며, 지식인들에게 특별한 위세가 부여되어 왔다. 특히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체계들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상층의 지식인들, 즉 직업 범주로 보면 교수,관료, 언론인,법조인,의사,전문경영인 등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유기적 지식인들이었다.
이른바 한국 사회의 ’주류(main-stream)’라고 할 때 대체로 이들 집단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주류라는 개념은 이 집단 내에서도 민주화 운동 등 저항적 비판적 지식인의 유형을 제외한 체제 기능적 역할을 주로 담당했던 지식인 유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잇다. 이들에게는 ‘발전’과 ‘경쟁력’이 실질적 가치로 내면화되어 있고, 이를 위해 효율적인 경영과 관리에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주요한 덕목으로 꼽혀왔다. 한국의 발전국가 모델에서 이들의 생산적 역할은 가감없이 평가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고도의 경제발전과 근대화’에서 이들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엘리트 재생산 구조와 문화 자본 메커니즘에 의해 울타리를 칠 수 있었다. 특히 지역주의와 결합된 학교 연고주의가 그 메커니즘의 주요한 응집요소였다 할 수 있다. 지역별 핵심 명문 고등학교 출신들, 그리고 소수의 ‘일류대학’이 보유하는 문화 자본은 다른 학교 출신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자원 동원 능력을 발휘해왔다.
각급 조직의 핵심 엘리트의 충원은 학벌 연고주의에 의해 강력히 뒷받침되었다. 특히 국가 권력차원에서 수직적 사회 통제 체제 확립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러한 학벌 연고주의를 활용해왔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대의 경북고 우대, YS시대의 경안고 우대, DJ시대의 광주일고, 전주고 우대현상은 학벌 연구주의를 활용한 권력 강화 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정부, 정당, 언론, 문화예술계, 하계 등에서 핵심 지식인층은 높은 학맥의 동질성을 유지하지 있고, 그것을 순수한 경쟁의 결과로만 볼 수 없는 편향적 자원 동원의 연줄망이 작동해온 것이다. 비슷한 능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비명문 출신의 사람들에게 이는 넘어서기 어려운 진입 장벽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주류 지식인의 특권구조는 이렇게 재생산되어 왔다.
한편 비판적 지식인은 상대적 소수였다. 이들은 ‘민주화’와 ‘체제 개혁’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이들은 경영의 논리보다는 ‘운동의 논리’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은 민주화라고 하는 한국 현대사의 또다른 주요 발전 에너지를 분출시키고 실현시킨 집단이었다. 이들은 잔신들의 투쟁에 힘을 불어넣어주고 정당성을 부여할, 강한 ‘희망의 원리’가 필요했다.
누구보다 자기 희생적이고, 민중을 위해 헌신적이지만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지나친 자기확신과 바우만이 말하는 이른바 ‘세습적 희생자 의식’(바우만·임지연 당대비편21호,2003)이다. 오류의 가능성을 잘 인정하지 않고, 민주화 투쟁에 서지않았던 사람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쉽게 몰아버리려는 경향은 여기서 기인한다. 주류 지식인이 자신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데 문제가 있다면, 사회운동적 지식인은 도덕적 우위성을 쉽게 가정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체제 순응적 지식인과 비판적 지식인의 경계는 민주화 이후 정권 변화와 교체가 수 차례 일어나면서 혼융되기 시작한다. ‘민중과 지식인’이란 책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맹렬히 옹호했던 한왕상 교수가 교육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에 임용되었고, 1970년대 1980년대 노동운동을 대표했던 투사 방용석과 이태복이 노동부장관과 복지부장관을 역임했다. 이 외에도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의 국회 진출이나 관직 임용 등 ‘주류화’ 경향이 YS,DJ정부를 거치면서 꾸준하게 이루어져 왔다. 급기야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 ‘운동권의 청와대 장악’이라고 언론에서 표현할 만큼 ‘운동권 지식인’들의 정부 참여를 비롯해 제도권 진입은 놀라운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지난 대선이 우리 사회의 표준적인 의식이 50대에서 30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면, 이 30대의 사회의식 가운데는 분명희 ‘민주화’와 ‘변혁’이 중요한 에토스로 자리잡고 있고, 30대의 의사소통 체계에서 이런 에토스는 은연중에 지배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386세대의 특징은 민주화 과정의 경험과 그 이후 사회적 적응과정이 불연속성을 이루거나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운동권 출신들이 사법고시나 회계사 시험에 다수 합격하고, 벤처 기업가로의 변신에 성공하고 각광받는 영화감독이나 작가, 언론인, 교수 등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고, 운동 경험이 이런 사회적 진출 과정에 족쇄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적·윤리적·심미적 자원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이들 ‘신주류’의 특징은 구주류보다 이상주의적이면서 미래에 대한 감각이 빠르고, 탈권위적 성향과 자유분방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구주류가 실리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접근 방법을 선호했다면 신주류는 명분과 가치를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문제는 주류와 비주류의 뒤섞임이 그 자체로 ‘국가경영’의 담론 및 논리와 ‘사회 운동’의 담론 및 논리가 어떤 식으로 결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동의 담론은 체계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초점이 있다.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문제 해결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사회적으로 설득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따라서 운동의 논리는 캠페인의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운동의 담론을 펼치는 지식인들은 문제의 소재가 어디있고, 누가 문제를 발생시키고 해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 집단인가를 폭로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대립각을 세워 이분법적 적대의 구조를 명확히 할수록 운동은 조직적 자원 동원을 상대적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사태를 과장하고 집합적 흥분을 야기하는 프로파간다를 섞는 것은 불가피한 전략적 수단이다.
반면에 ‘국가 경영’의 담론과 논리는 기본적으로 체계를 운영하고, 발생된 문제들을 정책적으로 해결하는데 목적이 있다. 국가가 개입해야할 대부분의 사안들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이 개입된 쟁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우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세력이 특정한 이익집단이나 세력의 손을 쉽게 들어줄 수 없는 사회적·정치적 맥락이 조성된다. 가능하면 서로 다른 이익들과 견해들을 조정해낼 수 있는 논리가 더 많이 요구되는 것이다. 통치 세력이 특정한 명분에 입각해 당파적 입장을 노골화할 경우 일시적으로는 박수를 받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는 국정 운영에 부담을 안겨줄 공산이 크다.
국가경영에 필요한 담론이나 논리는 ‘제도 바깥’에서의 담론과 비교할 때 훨씬 더 냉정함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 도덕적 잣대로 국가행위를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도 도덕적 잣대를 쉽게 들이대는 운동의 논리와는 다른 점이다. 정치의 환경, 특히 국제 관계는 도덕적·정치적 정당성과 이익 논리가 늘 충돌하는 공간이고 이 경우 대부분 명분보다는 실익에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국가경영에 내재한, 비껴갈 수 없는 특성이다.운동의 담론과 국가경영의 담론이 접합되고 충돌되는 국면에서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와 혼돈을 ‘참여 정부’의 출범과정에서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지식인들의 담론들에서 우리는 이미 목도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언표의 변화 과정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촛불시위’ 등 우리 사회에서 미국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세력들의 정서 및 인식과 노대통령의 그것 사이에는 상당한 친화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에 당선된 개혁적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당당해지려는 태도에서 나온 한미 간 북핵 문제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발언들과 “국익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할 수밖”에 없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해 “한미 간에 어떤 이견도 없다”고 공언하는 발언 사이의 거리에서 이런 딜레마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재벌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도 어느새 속도 조절론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재벌 개혁을 원칙론으로 주장하는 가치 정향과 실물 경제에 충격 요법이 가하는 폐해를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론 사이의 긴장을 나타내는 것이다. 국민들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한, 경제 개혁의 논리가 성장의 논리를 압도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와 긴장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할 것인가가 참여 정부에서 말하는 ‘참여’의 성격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참여는 물론 국민들의 직접적인 의견 개진과 참여의 길을 열어놓고, 국민 여론을 중시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공론을 형성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이렇게 저렇게 조직하는 데는 지식인들의 매개적 역할이 필수적이다. 정확히 말해 참여는 국민과 정부의 직접 소통이나 참여라기보다는 지식인들의 매개를 통한 소통과 참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언론의 경우에 이른바 조ㆍ중ㆍ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은 참여 정부가 지나치게 ‘시민사회의 논리’에 기울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국정의 논리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지식인들의 의견에 지면을 집중적으로 할애한다. 반면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 언론은 ‘국정’을 NGO수준의 시각과 기준들에 맞춰 조율할 것을 요구하는 지식인들의 견해를 집중적으로 전달한다.
정치사적 뿌리에서 후자와 친밀한 노무현 정부가 상대적으로 후자의 목소리를 더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국가 영역의 ‘정치’와 시민사회 수준의 ‘정치’가 체계의 각기 고유한 특성상 직접적으로 동일시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시간이 흐를수록 전자로 회귀할 개연성은 높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발생할 NGO 또는 핵심 지지층과의 긴장을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가의 여부가 ‘참여 정부’의 성패를 살펴보는 주요한 관측점의 하나가 될 것이다. 또한 정부에 들어간 NGO출신 지식인들이 국정의 논리와 운동의 논리를 조정할 수 있는 논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가도 매우 중요해지게 된다.
만일 국민의 정부에서 일부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억지로 이 둘을 통합하여 세련되지 않은 이데올로기를 섣불리 만들려는 시도는 그것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것이다. 이는 비판적 지식인의 참여가 속화(俗化)되는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혁에 대한 희망과 국정 현실의 모순과 딜레마를 정직하게 드러내고, 이해를 구하고 지혜를 모으려는 노력이 ‘참여정부’의 이름에 값하는 길일 것이다.
3.참여민주주의와 전문가 사회한나 아렌트는 정치의 자율성을 옹호하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공적인 것을 행한 개체의 의견과 주장을 존중해주는 것이 진정한 민주 정치의 전제라고 주장하였다(Arendt, 1996). 특정한 도덕적 기준과 원칙들을 완고하게 설정하고, 그것들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욕심에서 모든 전체주의와 파퓰리즘의 근원이 형성된다. 상호 이해와 토론, 차이의 조정, 그리고 합의의 도출이라는 과정을 중시하는 장치만이 자율성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참여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렌트는 정치의 자율성과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지식인과 일반 대중들의 관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실제의 정치 과정에서 참여민주주의가 제대로 관철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때의 참여에서 지식인들이 주인공인 반면 대중들은 조역 또는 엑스트라에 머물고 마는 것이 아닐까? 직접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맑스주의자들이 현실에서 선보인 여러 정치 형태들, 소비에트나 자주관리제 등은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었고, 아렌트가 그토록 경계했던 ‘정치의 진리’를 가정하고 독단적으로 구성하려는 일부 지식인들의 독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여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경우에도 권력을 가진 지식인들이 독단적으로 태도들 취하고, 대중들을 일방적으로 동원할 경우 정치의 자율성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
이런 독단화에 빠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바꾸어 말해 이상적인 대화 상황과 다방향 의사소통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참여민주주의가 활성화될수록 일반 시민들의 역할보다 지식인들의 역할이 더 강화된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앞서도 말했지만 오늘의 사회는 고도의 전문체계들로 이루어져있고, 지식정보화가 심화될수록 전문가가 지배하는 사회 모델이 힘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참여가 ‘시민 참여’라기보다는 ‘전무가 참여’로 귀착될 가능성이 꽤 높은 편이다.
최근 어느 때보다 교수와 연구자들을 포함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정치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의 복합체계화 전문체계화에 조응하여 정치 자체가 전문화되고 있고, 전문가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지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의 무대에서 논의되는 사항들은 구체적이고 세밀한 전문적인 지식의 뒷받침 없이는 토론에 개입하는 것조차 매우 어렵다. 여론 조사상에서 나타난 일반 시민들의 의견은 지극히 추상화된 것이고, 특정 사안들에 대한 대중들의 인상과 선호도가 어떤가 하는 것만을 보여줄 뿐이다.
정책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안들은 일부의 전문가들만이 자초지종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만이 이익집단 또는 계층이나 지역과 관련된 직접적 이익들을 넘어 더 큰 사회적 공공이익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 경우 시민 참여란 상당 부분 실효성이 없거나, 전문가들로 한정되기 십상이다. 부르디외가 걱정한 ‘폐쇄효과’는 오늘날 ‘정치’와 ‘정책’의 통합성이 갈수록 커지는 환경에서 일반인들이 정책적 전문성을 다룰 만한 정보과 식견을 갖기 어렵다는 사정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오늘의 사회적 여건들 속에서 상층 지식근로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가들의 ‘가치’는 계속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 상층 지식근로자들은 지식정보사회의 총아로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들은 탈근대적 지형에서 새로운 문화 상품의 생산자이자 구매자라는 뜻의 프로슈머(prosumers)이기도 하며, 갈브레이드가 말하는 일종의 만족 계급(Galbraith,1990)에 해당된다. 명예와 부와 권력을 한 손에 넣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가난하지만 명예를 먹고 사는 선비형 지식인이나, 권력에 굴하지 않는 초개형의 지식인 모델로 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지식과 정보가 그 자체로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이자 상품이 되는 시대에, 이들은 지식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본과 연계되고 권력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네트워크는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지식인의 덕목으로 부추겨진다. 이런 조건 속에서 지식인들이 자신의 고유한 영역에 머물기보다는 외부의 자원들을 얻기 위해 뛰는 것은 자연스런 풍토로 자리잡는다. 그 결과 지식인들이 문화자본과 경제적 자본, 그리고 정치적 자원을 단단하게 묶어내는 사회적 블록화 현상이 심화된다. 전문가 사회의 권력이 새롭게 조직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2대8의 사회’에서 2는 지식인 지배 사회를 상징함과 동시에 그들의 블록화를 상징하는 숫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4.지식인, 너의 이름에 대한 기대오늘의 지식인은 시대의 헤게모니를 상징하는 집단이다. 그들의 위용은 사회 곳곳에 넘쳐난다. 지배적 지위의 대를 물리려는 부모들이나 상향적 계층 이동을 꿈꾸는 부모들의 대부분이 상층 지식인을 자녀의 미래 모델로 상정한다. 상층 지식인으로 권력과 명예, 부가 몰리면서 지식인의 특권화 경향은 불가피하다.
이런 특권화 경향 속에서 지식인의 정체성도 유동하고 있다. 사회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취하면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은 소리’를 하는 고전적 지식인 모델은 더 이상 지배적인 모델이 되기가 어렵다. 여러 전문체계에서 생산과 효율을 조직하는, 그리하여 세계화 시대의 경쟁력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기능적 지식인 모델은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DJ정부가 제창했던 ‘신지식인론’도 이런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이런 지식인 모델에서는 조직과 체계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창의적으로 투입하면서, 일상에서는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지식인을 정형화한다.
사회적으로는 호모 사피엔스/파브르라고 하는 경제-기술적인 사유에 지배되면서 일상적인 삶에서는 심미적 개인주의에 토대를 둔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인 것이다. 이들에게 더 큰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고민하고, 세계 내에 던져진 타자들의 삶에 대해 우려하고 보살피려는 태도를 갖길 요구하는 것은 멋쩍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의 지식인을 공적인 일에는 무관심한, 오로지 사사로운 이익과 개인적인 삶에만 탐닉하는 ‘나르시즘’에 빠진 사람들로 묘사하는 것은 사실의 일부만을 반영한다.
나르시즘은 공공영역의 취약성이 이런 개인주의 성향에 의해 야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벨라(Bellah,1982)와 래쉬(Lasch,1982)의 입론이었다.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교육, 문화, 언론, NGO 등 현대성으 사회 영역들이 개인들로 하여금 사물을 정치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학습 능력을 키워주고, 일어나는 사태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견을 제시하도록 만드는 성찰적 기구들을 곳곳에 만들어 왔고 이 기구들이 나르시즘의 대항 기제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공적인 일에 대한 ‘큰 개입’보다는 ‘작은 개입’을 일상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메타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희망의 원리를 주고, 자기 희생적 집합행동에 투신했던 혁명적 비판적 지식인의 상은 크게 약화되었지만, 공적인 일에 대한 일상적 관심을 놓지않고 공론 형성의 담론 상황에 일상적 수준에서 개입하거나 참여하는 지식인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잘게 쪼개진 공공영역들을 위한 정치와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통해 참여민주주의를 기획하고자 한다면 지식인들의 정치적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요컨대 문제는 오늘날 지식인의 존재 자체가 복합성과 모순들로 짜여 있다는 것, 지식인의 사고나 행동방식도 도저히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를 가장 열렬히 옹호하는 것도 지식인이고, 그 가장 사악한 적을 만나는 것도 지식인 안에서인 것이다. 한편에서 엄청나게 확장된 지식 생산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더 넓고 깊이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한편 전문가 사회 속에서 지식인들이 현실 안주와 나르시즘, 내적 타락의 유혹들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으며, 신기술체계와 효율지상주의, 대중매체를 포함한 문화산업의 압력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지식인상은 어떤 것일까? 여기서는 두 가지 점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자신의 직업적 전문체계 안에 갇혀 있는 지식인보다는 자신의 삶에 날줄 씨줄로 연관되어 있는 더 큰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대해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지식인상을 장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려는 단순히 문화적 캠페인의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제도적 수준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즉 전문체계 안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의 과정을 개방적 토론과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아렌트의 의미에서 ‘정치의 효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고, 사회적으로 공적인 문제들에 대해 성찰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판단’의 기회를 더 많이 갖도록 해야 한다(김선욱,2002,91쪽). 이러한 ‘판단’의 차이들에서 출발하여 대화와 토론, 비판과 타협의 소통 과정이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소통이 반복적으로 행해질 때 참여의 폭도 훨씬 넓어질 수 있고, 지식인과 대중의 거리도 한결 좁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서 독단주의의 그늘로 벗어난 지식인들이 많을수록 성찰적 국가와 성찰적 시민사회에 근접할 수 있다. 이론과 진리를 다룬다고 믿는 지식인일수록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것은 곧장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누구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제적 태도와 사물이 자신이 정리한 틀과 스펙트럼에 의해 정리되는 것을 좋아하는 훈육사적 기질을 배양한다.
하지만 개방적 다원적 참여 민주 사회에서 이런 태도와 기질이야말로 지적 문화적 천박화와 복합적인 문제를 단순화함으로써 위험한 문제 해결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오만함과 단순화와 싸움을 지식인들 스스로가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가 실은 지식인의 함량을 결정하는 것이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성찰적 능력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한 논쟁들, 촛불시위부터 북핵문제를 거쳐 파병 문제에 이르기까지 진행되고 있는 논쟁은 중요한 공적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토론의 활성화라는 첫번째 기준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자유로운 성찰적 토론이라고 하는 두번째 기준에서는 썩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복합적인 문제 구조들을 드러내는 토론의 활성화라기보다는 특정한 의견을 도덕적 판관의 결정으로 간주하고 상대에게 강요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도덕적 입장을 갖는 것과 전쟁을 국제법적ㆍ정치경제학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은 바로 동일시될 수 없다. 더욱이 한반도 문제를 시야에 넣고 국가의 직접적인 이익을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외교의 논리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도덕적 판단 및 이론적 해석과는 또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논의의 위상이 다른 이 문제들을 한데 섞어 도덕적 판관의 입장을 고수하고, 모든 문제를 이분법적 구도에서 편 가르기로 해결하려는 것은 ‘참여민주주의’를 ‘파퓰리즘’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
정치 행위는 끊임없이 지각, 진단, 예측, 행동의 오류 혹은 진실을 구성해가는 모험적 게임임을 이해해야 한다. 확신을 강요하는 것이 정치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강요가 혹시라도 다른 의견을 갖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의도하지 않은 폭력 효과를 갖는다면, 또한 정치적으로 상처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예 공적인 토론으로부터 숨으려는 경향을 확산시킨다면 ‘대화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얼마 전 파병을 찬성했던 재야 출신의 한 국회의원이 80년대에는 ‘우익으로부터 테러의 위협’을 받았으나, 지금은 “좌파로부터 테러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씁쓸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최근의 토론 문화가 또다른 폭력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요컨대 우리가 기대해보는 것은 확실성의 화신들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더불어 살려고 하는, 그리하여 자신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늘 무게를 두는 지식인들이며, 그러면서도 나르시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실천적으로 구성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그런 지식인들일 것이다.
박형준 교수 2003. 4. 14. -02